호국사찰 남해 화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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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과 순국장병들을
모셨던 호국사찰 남해 화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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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화방사는 용문사, 보리암과 함께 남해군의 3대 사찰 중 하나로 망운산(786m)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화방사는 신라 신문왕 때 원효(元曉)대사가 연죽사(煙竹寺)로 창건한데서 시작되었으며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眞覺國師)가 현재의 위치 가까이로 옮겨서 중창하고 영장사(靈藏寺)라고 명명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2호 채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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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근거지였지만 왜군에 의해 불에 타 소실된 것을 1636년(인조 14)에 계원(戒元)과 영철(靈哲)이 현위치로 옮기면서 ‘연화형국’이란 뜻을 담아 화방사라 개칭했다.

 

영정조 시대 가직(嘉直)대사가 이 곳에 머무르면서 절을 중수한 이후 용문사(龍門寺)·보리암(菩提庵)과 함께 남해군의 3대 사찰로 중흥했다.
​화방사 대웅전의 본래 명칭은 보광전이었으나 1981년 화재로 소실되자 1984년 신축 복원하고 대웅전으로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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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오른편으로는 부처상과 범종루가 있고 왼쪽으로는 1998년에 축조한 9층 석탑이 서 있다.

 

 

 

2층 맞배지붕집으로 구성된 채진루는 대웅전과 마주보도록 배치되어 있는데 세부장식을 살펴보면 조선말기 수법을 잘 반영하고 있다.​이 곳에는 충무공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이 새겨진 높이 3m, 폭1.6m의 ‘이 충무공 충렬묘비’ 목판비문(1981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복원한 복원판) 이 서 있다.
화방사는 임란시 승병활동이 왕성했던 곳이며, 오랫동안 이순신 장군과 순국한 장병들의 제사를 지낸 기록이 남아 있는 호국사찰이다.

 

화방사에는 사찰이 건립되어 불상을 봉안할 때 불을 밝히는 옥돌로 만든 등잔인 옥종자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타 사찰의 옥종자와 달리 화방사 옥종자는 한번 불을 붙이면 꺼뜨려서는 안되며, 불이 꺼지면 다시는 불을 붙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옥종자(지름 24㎝, 높이 12㎝, 두께 2㎝, 무게 3.9㎏, 용량 3ℓ)는 1234년(고려 고종21) 이전에 만들어져 점화된 뒤 임진왜란 때 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2호로 지정된 채진루(採眞樓)와 승당(僧堂)·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유물로는 옥종자(玉宗子)·금고(金鼓)·이충무공비문목판(李忠武公碑文木版) 등이 있는데 금고(지름 70㎝, 너비 10㎝, 두께 1㎝)는 조선 중기 때의 작품으로 범자(梵字)가 사방에 양각되어 있다.

 

 

산닥나무꽃

 

화방사 주위(입구 왼쪽 언덕과 계곡)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1962년)된 산닥나무 자생지가 위치해 있다.
산닥나무는 우리나라에 있어서 그 수가 대단히 적고 제한된 지역에 분포하는 희귀성을 가지고 있는데 과거 종이를 만드는 원료로 사용되었다.

 

남해 화방사
남해군 화방사길 128-6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대곡리 1448
담당자 전화 055-863-5011
이용요금 : 무료
주차정보 : 화방사 주차장

 

/남해여행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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