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충렬사(忠烈祠)

1738

충무공의 충의와 넋을
기린 남해 충렬사(忠烈祠)

 

 

남해 충렬사는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다.

충무공이 전사한 후 그의 시신이 한때 이곳에 모셔졌는데 현재는 가묘와 묘비, ‘충렬’이란 현판 등이 남아있다.

 

 

​1633년(인조 11) 김여빈, 고승후 등 유림들이 옛터에 초옥 1칸을 짓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 시초이다.

충무공이 순국한 지 60년이 되던 1658년(효종 9)에 어사 민정중(閔鼎重)이 통제사 정익(鄭木益)에게 명하여 좁고 초라한 옛집을 헐고 새집을 지었다.

그 후 1663년(현종 4)에 통영 충렬사와 함께 임금의 친필로 내려준 현판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기록한 ‘유명조선국삼도수군통제사증시충무이공묘비 (有明朝鮮國三道水軍統制使贈諡忠武李公廟碑)’가 사당 곁에 있다.

비문은 1661년(현종 2)에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썼다.

1663년에 박경지, 김시성 등이 세웠다.

1643년 이순신 장군에게 충무라는 시호가 내려졌기 때문에 1633년 남해현령 이정건(李廷楗)이 세운 충민공비를 철거하고 1793년 5대손 이명상이 이충무공비를 다시 세웠다.

1726년 노량서원을 개원했으며, 1746년 사당 곁에 호충암(護忠庵)이라는 암자를 짓고 화방사의 승려 10명과 승장 1명이 번갈아 와서 사당을 지켰다고 한다.

 

 

​또한 공이 죽은 후 승병이었던 자운 스님이 공을 뜻을 기리며 쌀 수백 섬을 싣고 와 제사를 지낸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1760년 5대손 통제사 이태상(李泰祥)이 청해루를 짓고, 1769년 6대손 이한응(李漢膺)이 비각을 중수하고 사우를 단청하는 등 후손들이 충렬사의 중건에 많은 힘을 쏟았다.

하지만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충렬사는 훼철되었는데 위패는 본당 뒷편에 묻혔고 제기는 향교로 이관되었으며, 토지는 매각됐다.

충렬사에는 비각만 남게 되었다.

그 후 1899년 11대손 이민승(李敏承)이 비각을 중수하고 1921년 남해사람인 박진평과 정민주가 비각을 중건하고 이듬해 보존회가 조직되어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경내에는 비각·내삼문·외삼문·관리사 청해루 등이 있고 사당 뒤의 정원에는 충무공의 시신을 임시 묻었던 자리에 묘가 남아 있다.

1949년 정인보가 짓고 김충현이 쓴 충렬사 한글비의 비명은 “로량바다는 리충무공 전사하신 데라 여긔에 충렬사를 세우니라”라고 되어 있다.

내삼문에 충렬사(忠烈祠)와 비각에 보천욕일(補天浴日)이라는 액자의 글은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며 1965년에 걸었다.

 

남해충렬사


경상남도 남해군 노량로183번길 27
문의 055-860-8631
지정 : 사적 제233호
지정일 : 1973. 06. 11

 

/남해여행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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